유머글쓰기 평설 열국지 017
[列國誌]
■ 1부 황하의 영웅 (17)
제 1권 난세의 강
제3장 제후시대가 열리다(2)
괵석보는 느긋한 마음으로 왕사군을 편성하는 중에 신후(申侯)를 맹주로 한 4개국 연합군의 침공 소식을 들었다.
- 북에서는 견융(犬戎)이, 남에서는 신후(申侯)가, 동에서는 증(繒)과 서이(西夷)가 물밀듯이 밀려오고 있습니다.
괵석보는 대경실색했다.
숨기고 혼자 해결할 일이 아니었다.
주유왕 역시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기밀이 누설되어 재앙이 먼저 생겼구나. 이 일을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
언제 국방에 신경을 쓴 적이 있었던가.
그래도 괵석보는 산전수전 겪은 중신답게 당황해 하지만은 않았다.
"왕께서는 속히 여산으로 사람을 보내어 봉화를 올리십시오.
불과 연기가 올라가면 제후들이 달려올 것입니다.
그때 안팎으로 협공하면 적을 물리칠 수 있습니다."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러기 위해 여산(驪山)에 봉수대를 설치한 것이 아닌가.
주유왕은 즉시 사람을 보내어 여산 봉수대에 불을 지피게 했다.
이리똥 타는 연기가 하늘 높이 일직선으로 올라갔다.
그런데 웬일인가.
밤낮으로 봉화를 높이 밝혀도 군사를 거느리고 달려오는 제후들이 아무도 없었다.
지난날 여러차례 봉화로 희롱을 당한 바 있는 그들은
이번에도 포사를 웃게 하기 위한 속임수려니 여기고 아무도 군사를 일으키지 않은 것이었다.
그제서야 주유왕은 정백 우(鄭伯 友)의 말을 듣지 않은 것을 후회했으나, 때는 이미 늦었다.
신후를 비롯한 4개국 연합군이 호경을 겹겹이 에워싼 채 공격을 감행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 모든 것이 그대 때문에 일어난 일이다.
그대는 군사를 이끌고 나가 적병을 무찌르라."
주유왕(周幽王)은 모든 책임을 괵석보에게 떠넘겼다.
그래도 괵석보는 충심으로 주유왕을 섬겨왔던 것일까.
나가 싸우라는 명에 조금도 이의를 달지 않고 갑옷과 투구를 걸쳤다.
"못났든 잘났든 내가 섬겨온 왕이다.
어찌 그 명을 따르지 않을 수 있겠는가."
괵석보는 병차 2백 승(乘)을 거느리고 성문 밖으로 나갔다.
누가 보아도 무모한 행동이었다.
그 모습을 성밖에 포진하고 있던 신후(申侯)가 보았다.
옆에 있던 융주를 돌아보며 손을 들어 가리켰다.
"저자가 바로 왕을 우매함 속으로 끌어들인 도적이오. 속히 달려가 단숨에 도륙내시오."
융주(戎主)가 부하 장수들에게 외쳤다.
"누가 저놈을 잡아올 테냐?"
"소장이 잡아오겠습니다."
우선봉 패정이었다.
그는 어느틈에 말 위에 올라 괵석보의 병차를 향해 일직선으로 달려나갔다.
당시 중원인들은 기마병이라는 것이 없었다.
네 마리 말이 끄는 수레 - 즉 병차 위에 올라 싸움을 하기도 하고 병사들을 지휘하기도 했다.
이를테면 지금의 전차 군단이다.
반면, 견융(犬戎)을 비롯한 유목민족은 말을 타고 전쟁을 벌였다.
대신 그들에게는 병차가 없었다.
전차대와 기마대의 싸움이다.
어느 것이 우월한 수단인지는 알 수 없다.
둘 다 장단점을 가지고 있으리라.
추측해보면 평원지대에서는 전차군단이 유리하고, 고원지대에서는 기마대가 유리하지 않을까.
아무튼 이러한 전투 수단은 춘추시대까지 계속 유지되다가 전국시대에 이르러 변화를 가져온다.
중원인들도 기마대를 조직하기 시작한 것이다.
중원국 중 가장 먼저 기마병을 도입한 것은 조(趙)나라이다.
조나라는 이 기마군단의 위력에 힘입어 한때 전성기를 누렸다.
그후 다른 나라들도 앞다투어 기마대를 조직한 것으로 볼 때
이동 속도가 빠른 기마병이 좀더 우월한 전투수단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견융(犬戎) 장수 패정은 오로지 괵석보만 노리고 달려들었다.
괵석보는 어쩔 수 없이 패정의 칼에 응해야 했다.
한 사람은 말 위에서, 다른 한 사람은 병차 위에서 칼과 창을 휘둘렀다.
문관과 무관이 명확히 구별되지 않은 시기였다.
그래도 사람마다 능력의 차이는 있게 마련이다.
어떤 사람은 정치에 능하고, 어떤 사람은 무예에 능했을 것이다.
괵석보는 무예가 뛰어난 사람은 아니었다.
장수라기 보다는 문관이다.
나이도 많았다.
에초부터 패정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다섯 합도 넘기지 못하고 괵석보의 몸은 두 동강이가 되어 병차 위에서 굴러 떨어졌다.
"와아 ----------!"
연합군 진영에서 함성이 일었다.
"성을 공략하라!"
괵석보가 병차 위에서 굴러 떨어지는 광경을 지켜보던 융주(戎主)가 오른손을 번쩍 치켜들었다.
"잠깐!"
신후(申侯)가 융주의 신호를 제지하려 했으나 이미 융주와 만야속은 융족 병사를 거느리고 성문을 향해 돌진하고 난 뒤였다.
함성이 일었다.
아우성인지도 몰랐다.
융병(戎兵)은 밀물처럼 쏟아져나가고, 괵석보가 이끌던 왕사군은 바람에 날리는 나뭇잎처럼 사방으로 흩어졌다.
"사람을 함부로 죽이지 마라!"
신후(申侯)가 뒤쫓으며 악을 써댔으나 그 소리가 융병(戎兵)의 궤에 들릴 리 없었다.
그들은 닥치는 대로 왕사군을 쳐부쉈다.
성문이 쪼개졌다.
융병(戎兵)은 밀물처럼 성안으로 몰려들어갔다.
제 세상을 만난 듯 집집마다 불을 질렀고, 마주치는 사람마다 칼로 후려쳤다.
"아, 아.........."
신후(申侯)의 입에서 비탄의 한숨소리가 새어 나왔다.
결국 그는 속수무책으로 융병(戎兵)들의 만행을 지켜보는 수밖에 없었다.
018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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