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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머 글쓰기 평설 열국지 026

다빈1966 2021. 9. 16. 01:08

[列國誌]

■ 1부 황하의 영웅 (26)

제 1권 난세의 강

제4장 어머니와 아들 (3)



때로 어머니의 지나친 사랑이 아들을 못난이로 만들고, 더 나아가서는 장래마저 그르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태숙 단(段)이 그러한 경우였다.

그는 어릴 적부터 어머니의 치맛자락에 휩싸여 자랐다.

모든 것을 어머니 무강(武姜)이 처리해주었다.

그것은 나이가 들어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상황을 파악하는 안목이 너무 없었다.

형인 정장공(鄭莊公)을 몰라도 너무 몰랐다.


그는 오로지 어머니 무강의 말만 믿었다.

- 나도 곧 임금이 된다.

경성에 당도한 태숙 단(段)은 하루에도 수십 번씩 이 말을 중얼거렸다.


들뜬 나날을 보냈다.

백성을 다스리기보다는 갑옷을 만들고 병기를 손질하는 일에 온 힘을 쏟았다.

틈만 나면 군사들을 훈련시키고 병차를 점검했다.

경성 주변의 여러 촌장들을 불러들여 노골적으로 선언했다.

"지금부터 너희들이 경작하는 땅은 모두 내 봉토 소속이다.

앞으로는 세금을 신정에 내지 말고 나에게 바쳐라."


촌락의 수장들은 태숙 단(段)의 엄한 명령에 감히 항거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세금이 들어오지 않자 신정의 관리들은 안절부절못했다.

어쩔 수 없이 정장공에게 보고했다.


그런데 정장공(鄭莊公)의 반응이 뜻밖이었다.

"태숙은 어머님께서 사랑하시는 아들이다. 그냥 내버려두어라."


이 말을 전해들은 무강은 대단히 흡족하여 경성의 태숙 단(段)을 더욱 독려하였다.

- 이곳은 염려 말고 경성의 힘을 키워라.

태숙 단(段)은 더욱 신바람이 났다.

이제는 거칠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군후인 형님도 나를 어쩌지 못한다.'

그는 한층 대담해졌다.

이것을 기고만장이라고 하는가.

사냥을 나간다 핑계대고 군사를 몰아 경성에서 멀리 떨어진 형옹(衡雍)과 늠연 두 지방을 습격하여 자신의 봉토로 삼았다.

제족이 염려한 대로 정나라에는 두 명의 군주가 존립하는 형국이 되었다.



형옹과 늠연의 두 관장은 신정으로 도망쳐 정장공에게 호소했다.

"태숙이 군대를 이끌고 와서 저희들의 고을을 빼앗았습니다."

정장공(鄭莊公)의 반응은 여전히 태연했다.

오히려 입가에 웃음까지 머금었다.

"다치지 않았으면 그것으로 된 것 아니냐?"

형옹과 늠연의 관장은 할말을 잊었다.


그때 막료 중 한 사람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큰 소리로 외쳤다.

"공자 단(段)을 죽여야 합니다!"

정장공의 이복동생인 공자 여(呂)였다.

태숙 단(段)에게는 형이 된다.


공자 여(呂)는 분노와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다시 한 번 외치듯 말했다.

"모름지기 신하 된 자는 군사를 둘 수 없습니다. 군사를 기르는 자가 있으면 단호히 처단해야 합니다."


정장공(鄭莊公)은 부드러운 어조로 물었다.

"그것이 무슨 말인가? 태숙 단(段)은 그대의 동생이 아닌가?"


"아무리 동생이라도 나라에는 법이 있습니다.

제가 알기로 태숙 단(段)은 안으로는 모후의 사랑을 의지하고, 밖으로는 경성의 견고함을 믿고서

밤낮없이 군사를 조련하며 무예를 가르치고 있다고 합니다.

이것이 무슨 뜻입니까? 이는 바로 군위를 찬탈하려는 속셈입니다.

찬탈은 곧 대역이요, 대역은 참수형에 처해야 합니다.

당장에 군대를 보내 단(段)을 잡아 목을 베십시오. 그래야 후환이 없습니다."


흥분한 공자 여(呂)의 음성이 쩌렁쩌렁 궁정 안을 울렸다.

그런데도 정장공(鄭莊公)은 태연자약하기만 했다.

"단(段)에게 아무 죄가 없거늘, 어찌 그를 잡아다 목을 벨 수 있단 말인가?"


"주공께서는 어찌 단(段)에게 죄가 없다고 하십니까?

단(段)은 이미 여러 촌락을 자신의 봉토로 삼아 세금을 탈취했고, 그것도 모자라 멀리 형옹과 늠연까지 손을 뻗었습니다.

주공께서 이렇듯 버젓이 계신데, 선군이 물려주신 땅을 제 마음대로 빼앗았으니

그 죄만도 목이 서너 개 있어도 모자랄 판입니다."


"단(段)은 모친께서 사랑하는 아들이며, 나의 사랑하는 동생이기도 하다.

차라리 땅을 잃을지언정 어찌 형제의 정과 의를 저버릴 수 있겠는가.

공자 여는 너무 흥분하지 마라."


"제가 걱정하는 것은 토지를 잃는 것이 아닙니다.

이러다가는 나라를 잃을 까 두렵습니다.

태숙 단(段)의 세력이 강성해지면 도성 안 백성들도 두 마음을 품는 자가 생길 것입니다.

오늘 주공께서는 태숙을 용납하고 계시지만, 훗날 태숙은 주공을 용납하지 않을 것입니다."


"공자 여(呂)는 말이 지나치구나. 의심도 병이다. 너는 그만 물러가라."

정장공(鄭莊公)의 호통에 공자 여(呂)는 하는 수 없이 궁정을 물러나왔다.

안타까움과 답답한 마음을 누를 수가 없었다.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그때 대부 제족이 그의 곁으로 다가왔다.

"진정하시오."

"주공께서 골육의 정에 얽매여 나라의 큰일을 그르치려 하고 있는데, 내가 진정하게 생겼소?

제중족(祭仲足)도 마찬가지요. 그대는 어찌하여 주공에게 한마디 간언도 올리지 않는 것이오?"


제족은 지낭(智囊), 즉 꾀주머니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사람이었다.

정장공의 모신(謨臣)으로 불릴 만큼 정장공의 신임이 두터웠다.

- 그런 당신이 얘기하면 들을지도 모르지 않은가.

공자 여(呂)는 이렇게 타박하고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제족도 궁정 한구석에서 지금까지의 일을 모두 지켜보았다.

그는 그 어느 때보다도 정장공(鄭莊公)의 마음을 읽으려고 온 신경을 곤두세웠다.

애초에 태숙 단(段)을 경성으로 내보낼 때 가장 격렬히 반대했던 사람은 제족이었다.

그런데도 정장공(鄭莊公)은 어머니 무강의 뜻을 내세워 제족의 간언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다만 한 가지 여운을 남기긴 했다.

- 경성을 잘 다스려주기만 바랄 뿐이오.

이 말은 제족에게 내내 수수께끼로 남아 있었다.

그런데 제족은 그 수수께끼를 오늘에서야 풀게 되었다.

해답은 바로 정장공(鄭莊公)의 능청맞을 정도로 태연자약한 웃음 속에 숨어 있었다.


'처음부터 이러한 것을 노리고 있었구나.'

제족은 확신에 찬 나머지 자신도 모르게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것이 공자 여(呂)에게는 조롱으로 비쳤는가.

"나는 나라의 앞날을 근심하여 말한 것인데, 제중족은 무슨 까닭으로 비웃음을 던지는 게요?"


화가 난 음성이었다.

공자 여(呂)의 주먹에 한 대 맞을 판이었다.


제족(祭足)은 얼른 변명한다.

"내가 공자를 비웃을리 있겠소. 나는 다만 주공의 깊은 지혜에 감탄 했을 뿐이오."

"깊은 지혜라니오?"

"공자께서는 우리 주공을 어찌 생각하시오?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시오?"

"그렇지 않습니다. 어리석기는커녕 오히려 재주와 지혜가 넘쳐나신 분이지요.

그래서 제가 더욱 안타까운 게 아닙니까?"

"안타까워하실 것 전혀 없습니다. 주공께서는 이미 태숙 단(段)을 처치할 계책을 마련해두셨습니다."


공자 여(呂)는 그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태숙 단(段)을 처치할 계책이라니요?"

"지금 말씀드린 그대로입니다. 다만, 궁정에서는 여러 이목이 있기에 속뜻을 밝히지 않으신 것뿐이지요.

자세한 것은 주공께 직접 여쭈어보십시오.

아무도 없을 때 주공을 찾아가면 주공이 노리고 계시는 바를 아실 것입니다."


공자 여(呂)는 제족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주공께서는 분명히 태숙 단(段)을 잡아들일 의사가 없다고 하지 않았는가?'

하지만 제족은 모든 사람들이 '지낭'이라 부를 만큼 지혜와 지략이 뛰어난 사람이었다.

그의 말은 거의 틀린 적이 없었다.


'어쩌면 이번만큼은 제족의 예측이 빗나갈 수도 있지 않을까.'

며칠간 이런 생각을 하면서 공자 여(呂)는 정장공과 독대할 기회를 엿보았다.



그러던 어느 날, 공자 여(呂)는 정장공이 궁정의 방 안에 혼자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재빨리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무슨 일이냐?"

공자 여(呂)는 예를 올리고 나서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태숙 단(段)은 반역의 뜻을 품고 있습니다.

더욱이 모부인께서는 주공을 싫어합니다.

만일 안팎에서 공모하면 그땐 이미 정나라는 주공의 것이 아닙니다.

이것을 생각하면 잠이 오질 않습니다. 거듭 청하거니와 하루속히 태숙 단(段)을 잡아들이십시오."


"그대 말대로라면 국모도 잡아들여 문초해야 하지 않는가?"

이렇게 되묻는 정장공의 얼굴에서는 여전히 아무런 표정도 읽을 수 없었다.

"끊어야 할 것은 단호하게 끊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오히려 해를 당합니다.

모자간을 이간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진정 정나라의 앞날을 염려해서 올리는 충언입니다."


공자 여(呂)는 마지막이라는 각오로 말했다. 그때였다.

정장공(鄭莊公)의 얼굴에 변화가 일면서 목소리가 별안간 은밀해졌다.

"그대야말로 진정 정나라를 위하는 충신이로다."

".........................!"

"사실은 내가 이미 계책을 세워둔 바 있다.

그대 말대로 지금 태숙 단(段)을 잡아들이면 모친이 가만히 있지않을 것이요.

반역의 뚜렷한 증거가 없는 마당에 여러 사람이 끼여들면 일만 시끄러워질 것이 자명하다.

그리되면 세상 사람들은 나를 형제간에 우애없고 불효 막심한 자라고 비난할 것이다.

내가 지금 태숙 단(段)을 내버려두는 것은 그가 국모의 사랑만 믿고 반역을 일으키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그래야 모든 죄상이 뚜렷하게 드러나 처벌할 수 있고, 모친도 꼼짝 못할 것이 아닌가?"


공자 여(呂)는 깜짝 놀랐다.

제족의 말대로였기 때문이었다.

'제족은 귀신인가?'

그러나 그가 더욱 놀란 것은 이러한 계책을 세우고도 전혀 내색하지 않은 정장공의 태연자약한 행동이었다.

"으음!" 공자 여(呂)의 입에서는 자신도 모르게 감탄의 신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또 하나, 그가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것이 있다.

- 반역을 기다린다.

이것이 어찌 인내와 기다림만으로 가능한 일일까.

공자 여(呂)는 새삼 정장공(鄭莊公)이 커다란 바위처럼 여겨졌다.



🎓 27에 계속........


유머 글쓰기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