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유머 글쓰기 평설 열국지 015

by 다빈1966 2021. 8. 11.

[列國誌]

■ 1부 황하의 영웅 (15)

제 1권 난세의 강

제2장 요녀(妖女) 등장 (8)



"궁 안이거나 궁 밖이거나 포후(褒后)를 웃게 하는 자가 있으면 천금(千金)의 상을 내리리라!"

주유왕(周幽王)은 포사가 비단 찢는 소리에도 웃지를 않자 궁성 안팎으로 전지를 내렸다.

사람들이 기가 차지도 않아 속으로 비웃고 있는 중에 괵석보만이 며칠 밤낮으로 머리를 짜내 주유왕 앞으로 나갔다.


"신에게 포후(褒后)를 웃게 할 계책이 있습니다."

"말해보라."

"지난 날 주선왕께서는 서융의 침공을 막기 위해 여산(驪山)에 봉수대와 큰 북을 설치하고 봉화를 올려 제후들을 소집하곤 하셨습니다.

그러나 십수 년 이래 태평성대를 맞아 봉화를 올린 적이 없습니다."


"그것이 포후(褒后)의 웃음과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왕께서는 먼저 포후와 함께 여산(驪山)으로 행차하시어 봉화를 올리십시오.

그러면 제후들은 오랑캐가 침공해온 줄 알고 부리나케 달려올 것이 틀림없습니다.

도착해서 적병이 없는 것을 알면 제후들은 몹시 당황해 할 것이고,

그 모습을 보면 포후(褒后)께서는 틀림없이 크게 웃으실 것입니다."


괵석보의 말에 주유왕(周幽王)은 손뼉을 쳤다.

"그 계책이 매우 기발하구나."

여산(驪山)은 호경 동북쪽에 위치한 작은 산으로 지금의 섬서성 임동현(臨潼縣)근방에 있다.

지대가 높기 때문에 봉수대를 설치하기에 적합한 군사상 요충지였다.

봉수(烽燧)란 불이나 연기를 올려 긴급 사태를 알리는 통신 수단이다.

오늘날의 사이렌에 해당되는데, 주로 낮에는 봉(熢)을 피워 불과 연기를 볼 수 있게 하고,

밤에는 수(燧, 횃불)를 올려 불빛이 보이게 했다.

봉(熢)이란 '이리 똥을 태운 연기'라는 뜻으로 낭화(狼火)라고도 한다.

일반적으로 봉화(熢火)라는 말을 쓴다.

이리 똥을 연료로 사용하는 이유는 연기가 똑바로 올라가기 때문이다.

괵석보가 일러준 대로 주유왕(周幽王)은 포사를 데리고 여산으로 행차했다.

여산 기슭의 여궁(驪宮)에 잔칫상을 마련한 후 명을 내렸다.

"봉화를 올려라!"

이때 주유왕(周幽王)의 행차를 호위하기 위해 정백 우(鄭伯 友)도 여산에 와 있었다.

그는 단순한 연회려니 생각하고 있다가 봉화를 올리라는 명에 기겁하여 주유왕 앞으로 달려갔다.

"봉화는 국가의 위난에 대비하기 위해 설치한 것입니다.

까닭없이 봉화를 올리면 이는 제후들을 희롱하는 것이며, 신뢰를 잃어버리는 행위입니다.

훗날 진짜로 변란이 생겨 봉화를 올렸을 때 제후들이 믿지 않고 달려오지 않으면,

무엇으로써 나라의 위급을 구할 작정이십니까?"


주유왕(周幽王)은 자신의 흥을 깬 사람이 바로 정백 우(鄭伯 友)인것을 알고 화를 눌러 참았다.

"숙부께서는 염려하지 마십시오.

모처럼만에 이 곳에 놀러 왔으나 하도 심심하여 잠시 제후들을 희롱하려는 것뿐이오.

그리고 천하가 이토록 태평한데 병사를 모을 일이 뭐 있겠소.

혹시 훗날 변이 생기더라도 숙부에게는 도움을 청하지 않을테니 걱정 마시오."


자신의 말을 귓등으로 흘려 듣는 주유왕(周幽王)의 태도에 정백 우(鄭伯 友)는 자리에서 물러나며 길게 탄식했다.

"내가 진작 봉국으로 신정(新鄭)으로 옮기길 잘했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주왕실과 운명을 함께할 뻔하였구나."


이윽고 봉수대에 봉화(熢火)가 올랐다.

일직선의 연기가 하늘 높이 올라갔다.

불빛이 하늘을 찌를 듯했다.

북소리가 우레같이 일었다.

영락없이 오랑캐 침공을 알리는 신호였다.


주변의 제후국들은 모두 이 봉화(熢火)를 보았다.

- 서융이 쳐들어온 모양이다.

- 왕성에 변이 생긴 게 틀림없다.

사면팔방의 제후들이 제각기 장수와 병사를 거느리고 여산을 향해 달려왔다.

어찌나 급하게 달려왔는지 모두들 땀투성이가 되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가.

적병의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가 없다.

서융은 커녕 여궁에서는 질탕한 음악소리만 들려오고 있었다.

모두들 어리둥절해하는 사이 주유왕(周幽王)의 전지가 떨어졌다.

"오랑캐는 없다. 경들을 시험해 본것뿐이니, 그만 봉국으로 돌아가라!"

이때의 제후들의 표정을 굳이 자세히 묘사할 필요가 있을까.

얼마나 어처구니가 없었으면 망연자실 서로의 얼굴만 바라보고 서 있었을까.

그러한 광경을 포사가 누각 위에서 내려다보고 있었다.

입술을 굳게 다물고 팔을 난간에 기댄 채 물끄러미 제후들의 표정을 지켜보던 포사는 한순간 배를 움켜잡고 크게 웃기 시작했다.

"호, 호호, 호호호 ..........!"

포사의 입장에서 보면 세상에 대한 복수의 실현일 수도 있는 웃음이었다.

자신의 출생과 성장 과정 속에서 쌓이고 쌓인 처절한 고독감의 분출일 수도 있는 웃음이었다.


'잘나고 잘난 제후들아, 너희들의 모습이 고작 이런 것이었단 말이냐.

고소하고 고소하다. 너희들도 별 수 없구나!.

이제 나는 너희들을 보고 웃고 있노라. 보아라, 세상은 돌고 도는 것이다.'

어쩌면 포사는 속으로 이렇게 외치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그러나 사물을 보는 시각은 상대적이다.

기록자의 입장에서 볼 때 여산 골짜기로 퍼져나가는 포사의 이 웃음소리는 망국을 알리는 웃음소리였다.

오오, 안타깝고 안타깝구나.

맑은 날 여궁의 음악소리 질탕한데, 오로지 한 가지를 위하여 봉화가 하늘을 밝혔도다.

어허, 모든 제후들은 수고로이 달려왔으나 이것이 무엇인가.

포사의 웃음소리만 자아내는데 불과했구나.

기록자의 귀에는 그 웃음소리가 이렇게 들렸다.


"호호호.... 호호....."

한 번 터진 포사의 웃음은 좀처럼 그칠 줄 몰랐다.

주유왕(周幽王)이 그러한 포사 곁으로 다가가 조용히 속삭였다.

"그대가 한 번 웃으매 백 가지 아름다움이 일시에 생기는구나!"

주유왕은 시인(詩人)인가.

이 한마디를 내뱉고자 그 동안 그토록 애를 썼던가.

만일 왕으로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그는 위대한 시인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달을 잡기 위해 연못 속으로 뛰어든 천재 시인 이태백(李太白)처럼 말이다.

아니면 온 몸을 던져, 온 마음을 바쳐 오로지 한 여인을 위해 사랑을 불태우는 정열적인 삶을 살았을까.

이 날 이후 주유왕(周幽王)은 포사의 웃음을 보고 싶을 때마다 여산(驪山)으로 나와 봉화(熢火)를 올리곤 했다.

그때마다 제후들은 병사를 이끌고 달려왔고, 포사 또한 배를 움켜잡고 웃음을 터뜨렸다.


"이 모든 것이 괵석보의 공이로다!"

주유왕(周幽王)은 약속대로 그에게 천금의 상을 내렸다.


오늘날 중국에 '천금으로 웃음을 산다(千金笑買)'는 속담이 전해오는데, 이 말은 바로 이때 생긴 것이라고 한다.


17에 계속........

유머 글쓰기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