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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머글쓰기 열국지 037

by 다빈1966 2022. 3. 16.

[列國誌]

■ 1부 황하의 영웅 (37)

제 1권 난세의 강

제6장 정장공의 복수(1)


- 패배함으로써 승리하다.

한 번의 패배로 5개국 연합군을 일시에 물러가게 한 정장공(鄭莊公)의 이 이상한 전쟁은

또 한 번 천하 떠들썩 하게 했다.
- 과연 천고의 간웅다운 전술이라는 평 떠도는가 하면,
- 주우의 명분 없는 싸움이 불러일으킨 결과일 뿐이다.
정장공(鄭莊公) 깎아내린 사람 있었다.

그러나 위나라 주우가 주도한 이번 5개국 연합군 형성은

많은 약소국들이 품고 있던 정나라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어느 정도 씻어버릴 수 있는 계기 되었다.

힘을 합하면 해볼 만하다 라는 생각을 품게 되었던 것이다.


주평왕에 이어 왕위에 오른 주환왕(周桓王)도 바로 그러한 통치자 중 한 사람이었다.

주환왕(周桓王)은 소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나이가 어렸다.

그는 주평왕과 태자 호(狐)의 죽음이 모두 정장공(鄭莊公)의 강압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특히 아버지 태자 호(狐)는 오랫동안 정나라에 인질로 가서

울분과 외로움 나날 보냈기 때문에 천수 누리지 못한 것으로 믿었다.

'꺾어 버리리라!'

젊음의 패기와 정장공(鄭莊公)에 대한 울분 생각하면 이런 각오는 지극히 당연한 것인지도 몰랐다.

이러한 때에 위나라 비롯한 5개국 연합군이 정나라 공격했다.

결과야 어찌 되었건 정나라가 주변의 여러나라로부터 견제 받고 있다는 사실

그 자체만으로 주환왕(周桓王)에게 큰 용기 불러 일으켰다.

"이번 기회에......"
자립하리라.

그러나 그 뒷말은 차마 입 밖으로 내뱉을 수가 없었다.

천자국인 주왕실이 아닌가.

아무리 속박을 받고 있는 처지라 하더라도 제후국 정나라로부터의 자립이라는 말 차마 쓸 수가 없었다.
- 경사직(卿士職)에서 물러나라!

이렇게 전지 내리면 그만 아니겠는가.

더 이상 무슨 말썽이 있겠는가.

만에 하나 정장공(鄭莊公)이 무례하게 나오면 주변의 여러 제후에게 명하여 정나라 쳐부수면 그뿐 아니겠는가.

주환왕(周桓王) 머릿속 점점 대담한 쪽으로 돌아갔다.


마침내 그는 머릿속 상상 실천에 옮기기로 마음 먹었다.

주공 흑견을 불렀다.

"지난날 정장공(鄭莊公)은 내 아버지를 인질로 두었소.

그는 이일로 왕실 우습게 보고 있음 틀림없소.

왕과 신하가 서로 불안해하고 경시하면 어찌 나라를 다스릴 수 있을 것인가.

내가 경사직 다른 제후에게 부탁할까 하는데, 경(卿) 뜻 어떠하오?"


주공 흑견 경륜 있는 재상이었다.

주환왕(周桓王) 마음 꿰뚫어보았다.

고개를 천천히 흔들었다.

"정장공(鄭莊公)은 욕심이 많은데다가, 생각하는 바가 이리나 승냥이에 못지 않습니다.

만일 하루아침에 그의 관직을 빼앗아 다른 제후에게 준다면, 정장공(鄭莊公)은 분노하여 그냥 있지 않을 것입니다.

더욱이 왕께서는 천자에 오른 지 얼마되지 않습니다.

신이 왕의 심정 모르는 바 아니나, 시간 두고 천천히 때가 오기 기다리는 것이 좋을 듯싶습니다."


그러나 젊은 주환왕(周桓王)은 나이 많은 노재상의 말이 현실 타협적인 처사로 밖에 여겨지지 않았다.

무릎 위의 두 손을 움켜 쥐었다.

"아니오. 나는 가만히 앉아서 정장공(鄭莊公) 압제 받지 않겠소!

나의 뜻은 이미 결정이 됐소."

주환왕은 정장공 입조 명했다.
정장공(鄭莊公)은 수레를 몰아 낙양성으로 들어갔다.

의기양양한 기세로 정청으로 들어간 정장공(鄭莊公)의 귀에 전혀 생각지도 못한 주환왕(周桓王) 영이 떨어졌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는다는 옛말이 있다.

그대는 선왕이신 주평왕의 신하이다.

나는 그대를 경사(卿士) 직에서 물러나게 하고 괵공에게 정사 맡기고자 하노라.

경(卿)은 이제 정나라로 돌아가 스스로 편한 도리를 취하라!"


그 말을 듣는 순간, 정장공(鄭莊公) 가슴속에서 분노 불덩이 처럼 끓어올랐다.

정나라로 말할 것 같으면 2대에 걸친 왕실 최대의 공신이다.

정무공과 정장공이 없었더라면 주왕실은 이미 호경에서 멸망해 종적도 없이 사라졌을지 모를 일이었다.

- 대가가 바로 이것인가.

자신의 속을 잘 드러내지 않는 정장공이었지만, 이때만큼 참을 수 없었다.

"신도 오래 전부터 경사직(卿士職)에서 물러나려고 마음 먹었습니다.

이제 그 뜻을 이루게 되었으니 그만 물러가겠습니다."

찬 바람이 도는 음성이었다.

자리 차고 일어나 정청 나왔다.


궁성문 앞에서 정장공(鄭莊公)의 입조 소식을 듣고 인사차 조정으로 들어오던 몇몇 중신 만났다.

"벌써 나가십니까?"

"어린 왕이 나를 버리니, 내가 여기 더 이상 머물 까닭이 없소이다."

정장공(鄭莊公) 그들의 인사를 받는 둥 마는 둥 왕성 밖에 대기하고 있는 수레에 올라 바람처럼 정나라로돌아가버렸다.


정장공(鄭莊公) 경사직 박탈에 정나라 신하들은 이를 갈며 분개했다.

- 배신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주류를 이루었다.

몇날 며칠 궁정에 모여 왕실에 대해 비판했다.

"여러 말 할 것 없습니다. 당장 군사를 일으켜 왕성 쳐 부숩시다."

"배은 망덕 유분수지. 어찌 감히 우리 주공 쫓아내고 괵공 경사(卿士)에 앉힐 수 있단 말인가.

이 참에 아예 왕 갈아 치웁시다.

그렇게 되면 천하의 제후들도 모두 우리 정나라 두려워할 거이요,

나아가서는 패업 성취할 수 있을 것이외다."


강성론자 중 대표적인 사람 대부 고거미였다.

무예가 뛰어나고 전쟁에 능한 전형적인 장수형 이었다.

지난날에는 기묘한 우회 전술로 늠연을 침공한 위나라의 주우와 공손활을 대파하는 공 세우기도 했었다.
- 왕성을 공격하자.
고거미의 주장은 어느덧 정나라 내부의 여론이 되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고거미의 뜻에 동조한 것은 아니었다.

온건파도 있었다.

대부 영고숙이 그러한 사람이었다.

그는 올빼미와 염소고기로 정장공(鄭莊公)의 효심을 불러 일으켜

황천을 파 어머니 무강을 만나게 해준 바 있는 의인(義人)이기도 했다.

"왕성을 공격하다니, 안 될 말이오.

왕과 신하는 어미와 자식과의 관계나 다름없소.

우리 주공은 지난날 어머니도 용서하신 분이외다.

어찌 왕을 원수로 대할 수 있겠소."

"그럼 이대로 치욕을 안고 지내잔 말이오?"

"그렇소. 일 년만 참고 지내면 주환왕도 반드시 후회할 것이오.

그럴 때 입조하여 마음 달래면 예전의 관계로 돌아갈 수 있을 터인데,

어찌 한때의 분노로 선군(정환공)의 충성된 죽음에 손상을 끼치려 하는 것이오?"


두 개의 의견이 팽팽히 맞섰다.

그러할 때 중재역으로 나선 사람이 제족(祭足)이었다.

제족은 정장공의 모신(謨臣)으로서, 정나라 제일의 지략가이기도 했다.

"내 소견으로는 두 분의 생각을 한 데 모으는 것이 어떨까 싶소."

"한데 모으다니요?"

"이를테면 왕실에 대한 우리의 불만을 알리는 방법으로

주왕실 직할지인 온(溫)과 낙(洛)지역 곡식 탈취하는 것이오.

만일 주환왕(周桓王)이 사자를 보내어 항의하면 그때 가서 우리 정나라 불편한 마음 밝히고,

아무 말 없으면 적당히 지내다가 다시 입조하여 예전 관계를 회복하자는 것이오."

한마디로 주왕실과 정나라 공실의 체면을 모두 살리자는 절충안이었다.


"묘안이다!"

이렇게 외치고 나선 사람은 다름 아닌 정장공(鄭莊公)이었다.

그는 지금까지 신하들의 분분한 의견 듣고만 있다가

제족(祭足)의 말을 듣고 비로소 자신의 심증 밝힌 것이었다.


정장공(鄭莊公)에 대한 정나라 신하들의 신뢰 대단했다.

몇날 며칠 동안 토론의 장이 되었던 정청 안은 '묘안이다'라고 한 정장공의 한마디에 조용히 가라 앉았다.

고거미도 영고숙도 입을 다물었다.


제족(祭足)의 책략을 어떻게 실행에 옮길 것인가가 논의되었다.

- 초여름에는 보리, 가을에는 벼. 총지휘관은 제족(祭足)이다.

이렇게 결론을 내렸다.

정나라 수도 신정은 다시 분주해졌다.


제족은 1천 군사를 거느리고 황하를 건너 온(溫) 땅으로 들어갔다.

병차 50승을 보란 듯이 주변에 배치하고 온(溫) 땅의 관장을 찾아갔다.

"우리 나라에 흉년이 들어 먹을 것을 구하러 왔소이다. 양곡 1천 석만 빌려주시오."

온(溫) 땅 관장은 당황했다.
곡식을 빌리려면 왕성에 가서 청할 일이다.

그런데 군사까지 거느리고 와서 이 무슨 요구인가.

온(溫) 땅 관장은 고개 저었다.

"왕명 없이는 곡식 내줄 수 없다는 것 그대가 더 잘 알고 있지 않소?"


그러나 제족(祭足)은 한술 더 떴다.

"우리는 지금 몹시 굶주려 있소.

왕명 받아올 때까지 기다릴 여유가 없구려.

오는 길에 보니 마침 보리가 잘익었더이다.

일단은 사람 살리는 것이 급하니, 우리 손으로 보리를 베어가지고 가겠소이다.

관장께서는 왕실에 잘 말씀드려주시오."

말을 마침과 동시에 손을 들어 신호했다.

군사들은 각기 준비해 온 낫을 들고 온(溫) 땅의 보리밭으로 들어가 잘 익은 보리를 몽땅 베어 수레에 실었다.

온(溫) 땅 관장은 정나라 병사들의 강성함 아는지라

감히 만류할 엄두 내지 못하고 그대로 지켜보는 수밖에 없었다.


3개월 후, 제족(祭足)은 다시 병사들을 이끌고 성주(成周)지역으로 들어갔다.

성주는 낙양을 가리키는 말이다.

당시는 낙읍(洛邑)이라고 했다.

낙읍은 왕성이 있는 곳이다.

물론 왕성 가까이까지 접근한 것 아니다.

제족(祭足)의 병사들은 왕성과는 멀리 떨어진 낙읍의 교외에 펼쳐진 들판으로 들어갔다.


때는 7월 중순. 논마다 벼들이 잘 익어 황금 물결을 이루고 있었다.

왕실 직할 경작지 였다.

온(溫) 땅에서처럼 공공연히 논을 침범할 수가 없었다.

"장사꾼으로 변장하라!"

제족(祭足)의 명령에 군사들은 갑옷과 투구 대신 상인 복장을 하였다.

마을 입구 숨어 밤 깊기 기다렸다.


삼경이 되자 제족(祭足)은 횃불을 들어 신호를 보냈다.

매복해 있던 정나라 병사들은 신호가 떨어지자 일제히 낫을 들고 논으로 들어가 나락을 베었다.

다음날 날이 밝았을 땐 낙읍(洛邑) 교외의 들판엔 벼 한 포기도 남아 있지 않았다.

글자 그대로 허허벌판이었다.

경작지를 관리하는 대부는 이러한 광경에 넋 빼앗겼다.

재빨리 낙읍(洛邑)의 군사들은 동원하여 벼 도적을 뒤쫓았으나, 정나라 군사는 이미 철수한 뒤였다.



🎓 38편 계속........

출처 - 평설열국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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