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列國誌]
■ 1부 황하의 영웅 (40)
제 1권 난세의 강
제6장 정장공의 복수(4)
다음 날, 진나라 태묘(太廟)의 넓은 들엔 횃불이 환하게 밝혀졌다.
태묘(太廟)란 곧 종묘를 말한다.
종묘사직(宗廟社稷)이란 말이 있다.
종묘는 역대 제왕 혹은 제후의 위패를 모셔두는 곳으로, 황실 혹은 공실의 상징이다.
참고로 사직(社稷)은 국가를 상징하는 것으로,
토지의 신인 사(社)와 곡식의 신인 직(稷)을 합친 말이다.
어느 나라건 종묘사직을 중시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진(陳)나라는 특히 태묘를 소중히 하고 자랑거리로 삼았다.
진나라 시조는 진호공(陳胡公)인 규만이다.
규는 성이요, 만은 이름이다.
규만은 오제 중의 한 사람인 순(舜)임금의 후손이다.
주무왕이 은왕조를 멸하고 나서 성군인 순(舜) 임금의 후손을 찾아 진(陳) 땅을 내주고 제후로 봉했는데,
그가 규만 - 즉 진호공인(陳胡公) 것이다.
이런 이유로 진(陳)나라는 대대로 조상에 대해 자긍심이 높았다.
그것이 태묘를 숭상하는 것으로 표출되었다.
진환공이 주우를 태묘로 불러들인 것도 순(舜)임금의 성덕을 은연중 과시하려는 속셈에서였다.
진환공은 태묘의 뜰 앞쪽에 자리를 마련하여 앉았고, 좌우로는 신하들이 질서정연하게 늘어섰다.
이윽고 주우와 석후가 태묘(太廟)에 이르렀다.
그들이 막 문안으로 들어서려고 하는데 한 옆에 패가 붙어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신하로서 충성치 못한 자와 자식으로서 불효한 자는 태묘에 들어오지 마라.
범상히 넘길 수도 있는 문구였으나 속으로 찔리는 바가 있는 주우와 석후는 안색이 변했다.
안내를 맡은 대부 자침(子鍼)을 돌아보며 물었다.
"이 패를 세운 뜻이 무엇입니까?“
자침(子鍼)은 부드러운 표정으로 대답했다.
"이 패는 우리 선군께서 남기신 교훈입니다.
우리 주공께서는 그 교훈을 잊지 않기 위해 특별히 이 곳에 패를 세우신 것입니다.
신경쓰실 일 아닙니다."
그제야 두 사람은 굳은 표정 풀고 문 안으로 들어갔다.
여기까지는 별탈이 없었다.
모든 것이 제후국의 예법에 따라 이루어졌다.
그런데 그들이 진환공 앞으로 나가 예(禮)를 올리려는 순간이었다.
별안간 진환공 옆에 섰던 대부 자침(子鍼)이 표정을 엄하게 바꾸며 벽력 같은 소리를 질렀다.
"우리 진(陳)나라 태묘는 신성한 곳이다.
불충한 자와 불효한 자는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붙잡아 처단하게 되어 있다.
그러므로 이제 조상의 명으로 임금을 죽인 주우와 석후를 잡는다!
두 불충한 자 외에 위(衛)나라에서 온 수행원은 안심하라.“
이 외침을 신호로 좌우에 숨어 있던 무장 병사들이 비호처럼 달려나와 두 사람을 덮쳤다.
"앗!"하고 외칠 틈도 없었다.
주우와 석후는 손 한 번 써보지 못하고 순식간에 결박당했다.
그 무렵 석작은 여전히 문 밖 출입을 삼가고 있었다.
그는 집안에 틀어박혀 진나라 대부 자침(子鍼)으로부터 좋은 소식이 있기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그러던 어느 날, 대부 자침(子鍼)이 보낸 심부름꾼이 석작의 집 대문을 두드렸다.
모든 것이 원하시는 바대로 되었습니다.
일단 주우는 복읍 땅에 수감하고, 석후는 진나라 도성에 가두어 두었습니다.
다음 지시를 기다릴 뿐입니다.
자침(子鍼)의 서신을 읽고 난 석작은 길게 숨을 내쉬며 하인들에게 명했다.
"수레를 준비하여라.“
석작은 오래간만에 궁으로 들어갔다.
"모든 대부들을 불러들이시오.“
백관들은 석작의 부름을 받고 서둘러 입궁하였다.
석작이 모여든 신하들에게 진(陳)나라 대부 자침(子鍼)의 편지를 보여주며 말했다.
"여기 쓰여 있는 바와 같이 역적 주우와 석후는 이제 진나라에 갇힌 몸이 되었소.
지금까지의 일은 내가 추진했으나,
앞으로의 일은 위(衛)나라 종묘사직과 관계되는 일이므로 그대들과 함께 의논하고자 하오.
이 두사람을 어찌 처결하는 것이 좋겠소?"
그동안 마지못해 주우의 명에 따랐던 중신들은 부끄러움을 느끼며 일제히 대답했다.
"저희들은 오로지 대신의 분부에 따를 뿐입니다."
"두 역적의 죄는 결코 용서할 수가 없소.
나는 그 두 놈을 죽여 위환공(衛桓公)의 혼령께 사죄할 결심이오.“
백발 성성한 노대신의 각오에 중신들은 머리털이 곤두서는 것을 느꼈다.
한 중신이 석작의 눈치를 보며 말한다.
"원흉인 주우는 죽어 마땅하겠으나, 석후는 주우를 따른 것 뿐입니다.
가볍게 다스리는 것이 좋을 듯 싶습니다.
다분히 석작을 의식한 말이었으나, 석작의 반응은 얼음장보다 차가웠다.
"그런 소리는 입 밖에 꺼내지도 마시오.
주우의 반역 다 내 자식이 꾸민 일이오.
여러분이 가볍게 다스리자고 하는 것을 보니 내가 자식에게 사정을 두는 줄로 아는 모양인데, 그것은 잘못 아신 것이오.
나는 기어코 두 역적이 죽는 것을 확인해야 하겠소."
위(衛)나라 중신들은 비로소 이번 일에 임한 석작의 각오가 어떠한 것인지를 뼛속 깊이 실감했다.
이렇게 하여 우재(右宰) 추(醜)는 복읍으로 가 주우의 참수 현장을 지켜보기로 했고,
석작의 가신 누양견(樓羊肩)은 완구로 가서 석후의 처형을 확인하는 임무를 맡았다.
다른 신하들은 석작의 지시에 따라 수레를 끌고 공자 진(晉)을 모시러 형(邢)나라로 떠나갔다.
우재 추(醜)와 누양견(樓羊肩)은 진나라에 당도했다.
그들은 우선 진환공을 찾아 뵙고 석작이 전하는 감사의 말을 올렸다.
그런 후에 각자의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헤어졌다.
우재 추(醜)는 복읍으로 달려갔다.
주우가 거리 한복판으로 끌려 나왔다.
그는 자신의 신하인 우재 추(醜)를 보고 큰 소리로 외쳤다.
"너는 나의 신하가 아니냐. 어찌 감히 나를 죽일 수가 있단 말이냐?“
이때 우재 추(醜)의 대답이 절묘했다.
"그렇다. 지난 날 우리 위나라에서는 신하 된 몸으로 임금을 죽인 자가 있었다.
나도 그 자를 본받고자 하노라.“
주우는 할말을 잊었다.
고개를 떨구는 순간 칼날이 빛났다.
주우의 목은 피를 뿜으며 땅으로 떨어졌다.
그 시각, 누양견(樓羊肩)도 석후를 처형하는 장소에 도착했다.
옥에서 끌려 나온 석후는 어릴적부터 보아온 가신 누양견(樓羊肩)을 보자 일말의 희망이 생겨났다.
"마지막으로 아버님의 얼굴이나 한 번 보게 해주오.“
그러나 누양견(樓羊肩)의 입에서 나온 말은 석후의 가느다란 희망을 끊어버리기에 충분했다.
"나는 너의 부친으로부터 너를 죽이라는 명을 받고 이곳에 왔다.
네가 정히 부친을 뵙고 싶다면 네 목을 가지고 돌아가마. 그때 부친을 뵙도록 하여라.“
무사들이 칼을 뽑아 석후의 목을 향해 내리쳤다.
그의 목 역시 맥없이 땅바닥으로 떨어졌다.
한편, 오랫동안 형(邢)나라에서 망명 생활을 하던 공자 진(晉)은 석작의 호위를 받아 위나라로 돌아왔다.
그는 종묘로 들어가 비명에 죽어간 형이자 선군인 위환공을 위로하는 제사를 올린 후 임금에 올랐다.
그가 위선공(衛宣公)이다.
좌구명(左丘明)이라는 사람이 있다.
춘추시대 노나라 사람으로 공자(孔子)와 같은 시기에 활동했던 현자(賢者)이다.
그는< 춘추좌씨전>이라는 책을 쓴 사람으로도 유명한데,
이 책은 공자의 저서인 <춘추(春秋)>를 재해석한 글이다.
좌구명(左丘明)이 <춘추좌씨전>을 쓰던 중 이 대목에 이르렀을 때였다.
그는 석작이 아들 석후를 죽이라는 영을 내린 것에 대해 크게 감명받았던 모양이다.
그 소감을 다음과 같은 글로 표현했다.
석작은 대의(大義)를 위해 아들을 죽였으니 진실로 순수한 신하였다.
🎓 41편 계속........
출처 – 평설열국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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