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유머글쓰기 평설 열국지 025

by 다빈1966 2021. 9. 14.

[列國誌]

■ 1부 황하의 영웅 (25)

제 1권 난세의 강

제4장 어머니와 아들 (2)



정장공(鄭莊公)은 어머니 무강(武姜)이 자신을 무척 싫어하는 마음과 달리 효성이 지극했다.

무강(武姜)의 말이라면 죽는 시늉까지 할 정도로 어머니 마음을 불편하지 않게 하려고 애썼다.

하지만 무강(武姜)은 여전히 정장공을 싫어했으며,

둘째 아들 단(段)이 아무런 실권도 없이 식읍 공성에만 머물러 있는 것을 몹시 가슴 아파했다.

어찌하면 단의 세력을 키워줄까 궁리하다가 정장공의 효심을 이용하기로 했다.



어느 날, 그녀는 정장공(鄭莊公)을 내실로 불러 눈물을 내보이며 탄식했다.
"너는 군위를 계승하여 물려받은 땅만도 수백 리나 된다.

그런데 한배에서 난 동생은 고작 공성 궁벽한 곳에서 외롭게 지내고 있다.

이 일만 생각하면 나는 가슴이 찢어지는 듯하구나."


정장공(鄭莊公)은 어머니가 전에 없이 눈물까지 비치는 것을 보자 마음이 몹시 아팠다.

"제가 어떻게 하면 어머님의 마음이 좋아지겠습니까?"

"단에게 제읍(制邑)을 내주면 그나마 내 마음이 조금 편해지겠구나."

정장공(鄭莊公)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제읍은 본래 동괵의 영토였으나 정무공이 병탄하여 정나라 땅으로 삼았다.

하남성 최북단에 위치한 요지로 동괵의 임금 괵숙이 최후의 순간까지 버티며 저항했던 곳이기도 했다.

아무리 어머니의 청이라고는 하지만 결코 공족에게 맡겨서 될 땅이 아니었다.


정장공(鄭莊公)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제읍(制邑)은 국경과 접해 있을뿐 아니라 군사적으로도 매우 요긴한 곳입니다.

선군께서도 그 곳만은 절대로 봉하지 말라는 유언까지 내리신 바 있습니다.

제읍 이외의 곳이라면 어떤 곳이든 어머님의 뜻에 따르겠습니다."



무강(武姜)은 이미 단을 위해 치밀한 계획을 세워 두었다.

그녀는 정장공이 제읍을 내주지 않을 것을 알고도 제읍을 먼저 거론했다.

정장공(鄭莊公)의 이러한 약속을 끌어내기 위해서였다.

그녀가 속으로 점찍어둔 봉읍은 따로 있었다.


"그렇다면 경성(京城)을 내주어라."

경성은 지금의 하남성 형양(滎陽)으로 동괵의 도읍지였던 곳이다.

새로 이주한 정나라 수도 신정보다 더 크고 번화했다.

그런 곳을 봉읍으로 내어달라니......

정장공은 어이가 없어 한참 동안 입을 열지 못했다.

정장공(鄭莊公)의 마음을 눈치 챈 무강은 눈꼬리를 날카롭게 치켜 떴다.


"제읍(制邑)도 안 되고 경성도 안 된다면 차라리 단(段)을 다른 나라로 추방하여라.

타국에서 벼슬살이를 하는 게 그 애 장래를 위해서 훨씬 나을 것이다."

이것은 또 무슨 말인가?

모자의 연을 끊자는 협박이나 다름없는 말이었다.


정장공(鄭莊公)은 어머니의 단(段)에 대한 애정이 이처럼 깊은 줄은 몰랐다.

'장차 이 때문에 정나라가 어지러워지겠구나.'

정장공(鄭莊公)은 섭섭함 보다는 나라의 앞날이 걱정되었다.
그러나 정장공은 자신의 속을 일체 드러내지 않았다.


그는 어머니 무강(武姜)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마음을 정한 듯 입을 열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어머님의 분부에 따르겠습니다. 그만 노여움을 푸십시오."

비로소 무강(武姜)의 입가에는 한줄기 가는 미소가 피어 올랐다.



다음날 정장공(鄭莊公)은 궁정으로 나가 막료들을 불러놓고 선언하듯 말했다.

"단(段)의 식읍을 경성으로 옮기려 하노라."

"그것은 안 될 일입니다."

"안 되다니?"

"하늘에 해가 둘일 수는 없으며, 백성에게는 군주가 둘일 수 없습니다.

경성은 대성(大城)중의 대성입니다.

땅도 넓고 백성도 많아서 이 곳 신정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더욱이 공자 단(段)은 모부인께서 특별히 사랑하시는 아드님입니다.

공자 단(段)에게 대읍을 내린다면 이는 한 나라에 두 군주를 두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훗날 나라가 어지러워질까 두렵습니다."


제족은 제(祭) 땅을 다스리던 봉인(封人)이었으나, 정장공에게 발탁되어 대부에 오른 사람이다.

지략에 밝고 임기응변이 뛰어나 정장공의 신임이 두터웠다.

자(字)가 중(仲)이어서 사람들은 제중(祭仲)이라고도 불렀다.

여느 때 같았으면 제족의 말을 순순히 받아들였을 정장공(鄭莊公)이었다.

그러나 그는 이미 생각해둔 바가 있었기 때문에 제족의 말을 억눌렀다.


"이는 모친의 특별한 당부이오. 내 어찌 자식 된 몸으로 어머니의 뜻을 거역할 수 있겠소?"

"하오나 이번 일은 .............."

"그대가 염려하는 바는 충분히 알고 있소. 나는 다만 동생이 경성(京城)을 잘 다스려주기만을 바랄 뿐이오."

제족은 무슨 말인가를 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불현듯 짚이는 것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 경성(京城)을 잘 다스려주기만을 바랄 뿐이다.

언뜻 들으면 잘 지내기를 비는 마음으로 해석할 수 있으나 달리 해석하면 정반대의 뜻일 수도 있었다.

- 잘 다스리지 못할 때는 동생을 처단할 수도 있다.

일단 내줄 것은 내주어 공실의 안정을 도모하되 적당한 기회를 보아 그 불씨를 제거한다.

만일 그렇다면 그것처럼 확실한 방법이 없다. 과연 그런 뜻일까.


제족은 정장공(鄭莊公)의 얼굴을 쳐다보았지만 그 마음을 정확히 짚어낼 수는 없었다.

그날 아침 조례에서 정장공(鄭莊公)은 동생 단에게 경성을 봉한다는 자신의 의견을 관철시켰다.


공성에 머물러 있던 공자 단(段)은 이 소식을 듣고 그 날로 달려와 정장공에게 사은했다.

"형님 뜻을 저버리지 않겠습니다."

내궁으로 들어가 어머니 무강에게도 절을 올렸다.

무강(武姜)은 얼굴 가득히 웃음을 머금고 사랑하는 둘째 아들의 인사를 받았다.


공자 단이 자리를 잡고 앉자 무강은 좌우 사람들을 물러가게 한 후 은밀히 속삭였다.

"이번에 네 형이 너를 경성(京城)에 봉한 것은 내가 여러 차례 청했기 때문에 마지못해 응한 것일 뿐, 결코 너를 위해서는 아니다.

마음속으로는 언짢게 여기고 있음이 분명하다.

너는 경성에 가거든 비밀리에 군사를 길러 대사를 도모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갖추어 놓도록 해라.

적당한 때가 오면 내가 안에서 내응할 터이니, 그때 신속히 군사를 일으켜 이 나라를 차지하거라.

네가 이나라 군위에 오르면 나는 죽어도 여한이 없다."


무강(武姜)의 말에 공자 단(段)은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어머님 말씀을 잊지 않겠습니다."

다음 날 공자 단(段)은 경성을 향해 떠나갔다.

이때부터 정나라 사람들은 공자 단을 경성 태숙(太叔)이라고 불렀다.



🎓 26회에 계속........


유머 글쓰기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