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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머 글쓰기 평설 열국지 018

by 다빈1966 2021. 8. 24.

[列國誌]

■ 1부 황하의 영웅 (18)

제 1권 난세의 강

제3장 제후시대가 열리다(3)



주유왕(周幽王)은 황급했다.

주변을 둘러보니 궁인들 외에는 아무도 눈에 띄지 않았다.

"모두들 어디 갔는가?"

외침소리는 공허한 울림이 되어 궁전 안을 메아리쳤다.

궁인 몇 명이 급히 수레를 대령시켰다.

"성을 빠져 나가야 합니다."

주유왕은 포사와 백복을 수레에 태우고 뒷문으로 궁성을 빠져 나갔다.

궁성 밖으로 나왔을 때였다.

한 무리의 병사들이 오른편 길에서 나타났다.

주유왕(周幽王)을 향해 곧장 달려오고 있었다.

"이제는 글렀구나."

주유왕은 놀라서 달아날 의욕마저 잃었다.


그때였다. 귀에 익은 음성이 들려왔다.

"왕께서는 놀라지 마십시오. 신이 어가를 지켜드리겠소."

이게 누구인가.

사도 정백 우(鄭伯 友)가 힘차게 달려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오, 숙부!"

주유왕은 감격했다.



정나라 임금 정백 우(鄭伯 友)는 신정으로 봉국을 옮긴 후 호경과 거리가 몹시 떨어졌다.

봉화가 올랐을 때 그는 다른 제후들과 마찬가지로 봉화의 진위를 의심했으나,

- 그래도 혹시 ..........

하는 생각에 병사를 이끌고 호경으로 달려온 것이었다.

달려와보니 이미 성문은 깨어지고 성안은 융병들의 세상이 되어 있었다.


그는 오랫동안 그 곳에서 지냈기 때문에 궁성의 구조를 잘 알았다.

재빨리 방향을 틀어 성 뒤쪽으로 달려갔는데,

그것이 적중하여 막 궁성을 빠져 나온 주유왕 일행을 발견한 것이다.


"일단 여산으로!"

정백 우(鄭伯 友)는 주유왕의 수레를 호위하며 병사들에게 명령했다.

여산은 주변 제후국들과 통하는 길목이다.

이궁도 있다.

그 곳에 머물며 사태를 수습하리라는 계산이었다.


한참을 달리는데 뒤편에서 수레 하나가 쫓아왔다.

추격하는 적병이 아닌 것 같아 기다려보니 재상 윤구였다.

난리를 만나 주유왕의 안위를 걱정하다가 뒤늦게 궁성을 빠져나간 것을 알고 급히 쫓아온 것이었다.


"융병들은 궁성을 불지르고 창고를 약탈하는 중입니다.

많은 백관들이 난군(亂軍)손에 죽었습니다."

주유왕은 고개를 떨구었다.

눈물이 흘러내렸다.


여산(驪山)에 당도했다.

정백 우는 또 한 번 봉수대에 불을 지펴 봉화를 올렸다.

횃불과 연기가 하늘 높이 솟아올랐지만 여전히 구원하러 오는 제후들은 없었다.


"이 모두가 숙부의 말을 듣지 않아 일어난 일이오."

주유왕은 용서를 빌었다.

그러나 정백 우(鄭伯 友)는 주유왕을 위로할 여가가 없었다.

견융의 병사들이 여산 아래까지 추격해왔기 때문이었다.


"사세가 급합니다. 신이 목숨을 바쳐서라도 어가를 호위하겠습니다.

일단 제가 다스리는 정(鄭)나라로 피하셨다가 다시 앞날을 도모하십시오."

"그렇게만 된다면 평생 숙부의 말만 따르겠소."



정백 우(鄭伯 友)는 여궁 앞에다 큰 불을 질렀다.

융병들이 무슨 일인가 하여 불난 쪽으로 몰려들었다.

그 틈을 이용해 정백 우(鄭伯 友)는 주유왕과 포사와 백복을 수레에 싣고 여궁 뒤쪽으로 향했다.

"윤구는 어가에서 한 발자국도 떨어지지 마시오."

이렇게 외친 후 앞으로 달려나가 포위망을 뚫기 시작했다.

겨우 여산(驪山)을 빠져 나와 정나라로 향하는 길목에 접어 들었다.


그러나 견융 장수들은 전투 경험이 많았다.

미리 여산(驪山)을 빠져나가는 길목을 차단하고 있었다.

"포악한 임금아, 어디로 달아나느냐?"

앞을 가로막은 견융 장수는 고리적(古里赤)이라는 소장(小將)이었다.

정백 우(鄭伯 友)는 대뜸 고리적을 향해 달려들었다.

서로 어우러져 교전한 지 다섯 합이 못되어 정백 우의 긴창이 고리적의 가슴을 찔렀다.

고리적은 말에서 떨어져 즉사했다.

이 광경을 보고 융병들은 놀라서 흩어졌다.



주유왕 일행이 다시 반 마장쯤 갔을 때였다.

등뒤에서 함성이 크게 일었다.

견융군의 선봉장 패정이 대군을 거느리고 추격해 온 것이었다.

"윤구는 어가를 보호하고 먼저 가오! 나는 적병의 추격을 막으며 뒤 따르겠소."


그러나 융병의 숫자가 워낙 많았다.

정백 우(鄭伯 友)를 따르는 병사는 고작 수백 명에 불과했다.

그래도 정백 우는 무섭게 싸웠다.

긴 창을 휘두르는 용력이 신출귀몰했다.

융병은 정백 우(鄭伯 友)에 가로막혀 더 이상 앞으로 전진할 수가 없었다.


그런 중에 견융 융주와 만야속이 속속 그 곳에 도착했다.

융주는 정백 우(鄭伯 友)의 기세와 용력을 보고 멀리서 외쳐댔다.

"정백을 에워싸고 활을 쏘아라!"

화살이 소낙비처럼 정백 우를 향해 쏟아졌다.

정백 우(鄭伯 友)가 아무리 신출귀몰한 용력을 지녔다 하더라도 어찌 이 많은 화살들을 피할 수 있겠는가.

정백 우(鄭伯 友)는 마침내 무수한 화살을 한 몸에 맞고 쓰러졌다.

장렬한 죽음이었다.


정백 우(鄭伯 友)가 죽자 융병은 거칠 것이 없어졌다.

좌선봉 만야속이 주유왕의 수레를 따라잡았다.

윤구가 저항해 보았으나, 그것은 다른 살 길이 없어 해보는 몸부림에 불과했다.

만야속은 단칼에 윤구의 목을 치고, 주유왕이 탄 수레를 융주에게로 끌고 갔다.


주유왕(周幽王)은 두 손을 모아 융주에게 무릎을 꿇었다.

"목숨을 살려주면 궁성 안의 모든 보물과 재화를 그대에게 주겠소."

융주의 입가에 경멸의 웃음이 흘러나왔다.

"저런 자가 왕이었단 말이냐?
주 왕실도 별것 아니로구나."

말을 마치자 성큼 수레 위로 뛰어올라 한칼에 주유왕의 목을 쳐버렸다.

그 옆에 한 소년이 있었다.

태자 백복(伯服)이었다.

융주는 그 백복을 향해서도 칼을 휘둘렀다.

이때 백복의 나이 여섯 살.

그 백복(伯服) 옆에 한 여인이 앉아 있었다.

눈이 유난히 차가운 여인이었다. 포사였다.

그녀는 눈물을 흘리지도, 두려움에 몸을 떨지도 않았다.

얼음보다 더 차가운 눈길로 융주(戎主)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 눈길을 마주한 순간, 융주는 몸을 떨었다.

"네가 포사냐?"

".................."

"일어나라."

포사는 일어났다.

그런 포사를 향해 융주는 손을 내밀었다.

"내 손을 잡아라."


포사는 손을 잡았다.

융주(戎主)의 얼굴에 아까와는 다른 미소가 스쳐갔다.

"내가 너를 죽인다면 이 세상 모든 사내들은 모두 나를 경멸할 것이다."


융주(戎主)는 포사를 자신의 말에 태워 궁성으로 돌아갔다.

주유왕이 왕위에 오른지 11년 되는 해에 일어난 일이었다.



다음편에 계속........

유머 글쓰기 저자.